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올해의 책, 건물, 춤.


올해의 책
-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박완서 지음, 세계사 2012.
-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
-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정헌목 지음, 반비 2017.


올해의 건물
- Maekawa House, Kunio Maekawa 설계, 도쿄, 1942년 완공.
- 아모레 퍼시픽 사옥,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설계, 서울, 2017년 완공.


올해의 춤(린디합) 영상
- ILHC 2017에서 Dee Locke❤️ https://youtu.be/CQkbPA-qFGk
- Savoy Cup 2018에서 팀서울 https://youtu.be/7eU7YzJiRsM
- 나의 리더 쇼케이스 영상(뻔뻔😙) https://youtu.be/00bs3RkQcbA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멀고도 가까운>, 반비 2016.





다섯 번째 독서모임에서 읽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와 화해하기 위해(이해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들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택했는지 탐구한다. 작가의 이야기가 글 전체에 스며있다. 작가가 많은 이야기를 참조하는데, 그 중 주요하게 다뤄진 세 편을 뽑아 핵심 내용을 발췌해갔다. 





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GV] 11/9(금) <집의 시간들> 스페셜토크 w.라야, 신지혜, 이로










신: 라야 님의 첫 번째 집 이야기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만 듣고 인터뷰를 하러 갔어요. 아파트라고 했을 때 제가 들을 이야기에 대해서 그렇게 큰 기대가 있지는 않았어요. 제가 제 이름이 신지혜라고 누군가에게 소개했을 때 사람들이 "어쩌다 부모님이 이름을 신지혜로 지으셨대요?"라고 묻지 않는 것처럼, 아파트라는 주거 형식이 익숙하고 흔하잖아요. 그건 상투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이로: 혹시 아까 밖에서 오늘 개그 준비했다는 게...

신: 이거 아니예요.

이로: 죄송합니다.

(웃음)(웃음)(웃음)

신: 그건 아파트가 저에게 탐구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거든요. 익숙하고 흔하기 때문에. 근데 저희 부모님이 저 이름을 지혜라고 지은데에도 굉장한 스펙타클이 있어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웃음)(웃음)

있거든요. 라야 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갈 때 제 마음도 그랬던 거예요. 아파트에 살았는데 뭐 대단한 이야기가 있겠어?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지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는 되게 전형적일 거라고만 약간 편견을 가지고 인터뷰를 하러 갔죠. 일단은 라야 님이 살았던 아파트의 평수가 좀 컸어요. 주방이랑 밥을 먹는 식당이 분리되어 있는 집이었고, 1978년에 지어진 아파트이다 보니까 부엌에 식모방이 딸려 있었어요. 안방 같은 경우도 가족실 개념으로 쓰는 안방이랑 부부침실로 쓰는 안방이 따로 나눠져 있었어요. 집이 크다 보니까 실들이 분화되어 있었고, 라야 님이 그 집에 산 건 90년대이다 보니까 90년대 가족의 생활에 맞게 개조를 많이 해서 산 집이었거든요. 그래서 최초의 집에 아파트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 네 분이 계신데, 네 분의 이야기가 다 달라요. 전형성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저의 편견을 깨줬고, 그런 점에서 재미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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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재밌었는데 정리하다 말았다.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영화 <소공녀>(전고운 감독, 2017.)


영화 <소공녀>(전고운 감독, 2017.)를 봤다. 주인공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 애인을 좋아하고,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만을 모으며 살아간다. 영화는 미소가 본인에게 중요한 세 가지를 지키기 위해 안정적인 주거를 포기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충분하고 만족스런 인생을 위한 자원은 얼만큼일까? 최소한의 자원만이 주어진다면 어디에 쓸까를 질문하게 되는 영화. 

영화를 다 보고,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지 생각해봤는데, 어렵지 않게 세 가지를 추렸다. 건물을 볼 때(보러가는 과정 포함), 책 읽을 때(이 책의 재미있는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시간 포함), 춤 출 때(수업, 연습, 소셜, 푸꾸투어 포함)인데, 이 중에 두 가지, 혹은 한 가지만 남기라고 하면 고민이 클 것 같다.

아무튼, 2018년의 남은 날 동안 <올해의 건물>, <올해의 책>, <올해의 춤(영상)>을 꼽아봐야지. 각 항목별로 정산하고 이야기 나눌 모임이 있으면 좋겠네.









2018년 12월 4일 화요일

《Space of W-Architects - 한국의 여성건축가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도서출판사 주먹구구, 2017.






공간지 학생기자단 14기에서 만든 책으로 한국 여성 건축가 여덟 명의 인터뷰가 실렸다. 교수, 대형사무실 임원,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설계사무소의 소장,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소장 등 다양한 상황의 여성 건축가들이 “여성”으로 건축계에서 일한 경험과 함께 건축 작업에 대해 들려준다.

학생기자단 11명 중 10명이 여성이다 보니 모이면 자연스레 ‘졸업 후에 건축계에서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을 나누다가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한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2016) 서문의 한 줄을 오늘도 떠올렸다. "여자가 여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해 용기를 줍니다.”


비록 현실은...














*****


"제가 지금 54살인데, 동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리 나이 또래의 여성건축가들이 다 사라졌다고 말해요. 왜 전멸했는가가 이슈인데, 내 나이 또래에 두각을 나타냈던 사람들이 꽤 있었음에도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버티느라 힘들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요." 22쪽, <강미선>.



"막상 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저 이외에 다른 여학생은 보이지 않았고, 그렇기에 여성성을 지우려고 했어요. 동기들보다 열심히 해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시기였어요. 여성으로서 무언가를 다르게 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31쪽, <이선영>.

"제가 교수로서 얼마나 잘 해나가는지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던 거죠. 당시 저는 제 이후에도 여성 교수를 채용하는 기회가 많아질 수 있도록 일에만 집중했어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주목받는 만큼 제대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고군분투했어요. 후배들, 학생들에게 롤모델이 되기 위해 집착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33쪽, <이선영>



"저는 우리나라 여성 건축사 1호 지순 선생님이 멘토 역할을 해주셔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45쪽, <박영순>.

"보통 30-40대가 커리어에서 정점인데, 그때 육아가 걸림돌이 돼요. 저도 아이 둘은 너무 힘들다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지순 선생님이, '아이들은 엄마의 등을 보고 자란다. 아이들은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 자라니까. 보여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사무소에 가기도 했죠." 48-49쪽, <박영순>.



"많은 부부 건축가가 건축사협회에 등록할 때 둘 다 건축사가 있어도 보통 남편만 해요. 한 사무소에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래도 저는 같이 등록했지요. 공동대표라는 것이 욕심일 수도 있는데, 저는 제 나름대로 권리라고 생각했어요." 61쪽, <김희옥>.



"낮은 연차일 때 여자는 보고서 위주의 작업을 하고 남자는 도면이나 현장 일을 많이 맡게 되었어요. 그걸 객관적으로 차별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했던 거 같네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입사 당시 신입사원의 비율은 같았지만 회사에 여자 부팀장이 거의 없었어요. 팀장은 한 명도 없었고요." 77쪽, <이주영>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직했을 때 '여자라는 이름 뒤에 숨으려 하지 말아라. 여자라서 못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라'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회사에 다녔어요. 그때는 모두가 항상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일하는 분위기였고 저도 그렇게 건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불만없이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근무 분위기 자체가 남성적인 문화의 일면이 아닐까 싶어요." 91쪽, <조윤희>.

"작년에 임신을 한 상태로 현상설계공모 발표를 하게 되면서, 제가 임산부라는 사실이 심사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임산부임을 모르길 바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91-92쪽, <조윤희>



"제가 졸업 후 입사한 회사는 건축계에서 인지도 높은 곳이었지만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80%밖에 되지 않았어요." 99쪽, <한기영>.







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11월 독서 모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



"건축학을 잘 모르면서도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한 것이라 믿고 있다. 지면(紙面)이 곧 지면(地面)이어서, 나는 거기에 글을 짓는다. 건축을 위한 공정 혹은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있을 만하고 또 있어야만 하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 한 편의 글에 그런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은 (취향이나 입장이 아니라) 인식이다.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건축에 적합한 자재(資材)를 찾듯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특정한 인식을 가감 없이 실어 나르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는 플로베르적인 가정을 나는 믿는다. 그런 문장은 한번 쓰이면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다.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필요한 단락의 개수를 계산하고 각 단락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배분한다. 가급적 각 단락의 길이를 똑같이 맞추고 이를 쌓아 올린다. 이 시각적 균형은 사유의 구조적 균형을 반영한다(반영해야 한다). 이제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 한 단락도 더하거나 빼면 이 건축물은 무너진다(무너져야 한다).
-서문에서.


12월 독서 모임에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을 읽고 이야기 나눴다. 이 책은 2010년 이후 ≪한겨레21≫의 '문학사용법' 코너에 연재한 글과 함께 다른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하나로 책 전체를 꿰는 주제 없이, 그 때 그 때 쓰여진 글을 묶은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고민했다. 
서문의 실린 좋은 글을 짓기 위한 세가지 준칙(인식적, 정서적, 미학적 측면)을 토대로 신형철 문학비평가가 문학작품을 비평하는 기준이 드러난 문장을 본문에서 발췌해 갔다.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10월 독서 모임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면역에 관하여>,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몸이 안 좋아서 모임에 못 갔다.






2018년 9월 20일 목요일

9월 독서 모임 <랩 걸>





두 번째 독서 모임.
2018년 9월 19일, 망원의 북카페에서.
호프 자런 지음, <랩 걸>, 김희정 옮김, 알마 2017.


과학자 호프 자런이 자신만의 실험실을 꾸리기까지 "어떻게 몸과 마음을 모두 쏟아부으며 과학을" 해왔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 과학에 대한 열정, 동료 빌과의 신의, 식물 이야기가 담겼다. 





2018년 9월 5일 수요일

2018 도쿄 여행 추천 목록

1) Akagi Shrine(赤城神社)

2010년에 켄고 쿠마(켄고 쿠마씨가 카구라자카에 산다는군요)의 설계로 리노베이션한 신사다. 전통 신사와 비교했을 때, 재료도 그렇고 디테일에서도 밝고 가벼운 느낌을 받았다. 6층짜리 주거 건물이 신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점도 특이한데 리노베이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주소 신주쿠구 아카기모토마치 1-10
TEL. +81 3-3260-5071
영업시간 24시간
웹사이트 www.akagi-jinja.jp
kkaa.co.jp/works/architecture/akagi-jinja-park-court-kagurazaka




























2) International House of Japan(国際文化会館)

마에카와 쿠니오, 사카쿠라 준조, 요시무라 준조의 공동 설계로 1955년 준공한 국립문화회관이다. 1층 로비에서 보이는 정원 풍경이 근사하다. 로비에 놓인 의자가 편해 창 밖 풍경을 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주변이 고층 건물로 둘러싸여 분지 같은 정원을 산책한 시간도 좋았다. 1층에 Tea Lounge <The Garden>과 지하 1층에 식당 <SAKURA>을 이용할 수 있다.




주소 미나토구 롯폰기 5-11-16
TEL. +81 3-3470-4611
영업시간 24시간, The Garden(7:00-22:00), SAKURA(11:30-14:00, 17:30-22:00)
웹사이트 www.i-house.or.jp
































3) Kyu Asakura House(旧朝倉家住宅)

관동대지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도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 귀한 모양이다. 1919년 지어진 정치인 토라지로 아사쿠라의 주택으로 2004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다이칸야마에서 이런 호젓함이라니요.




주소 시부야구 사루가쿠초 29-20
TEL. +81 3-3476-1021
영업시간 10:00-18:00(3월-10월), 10:00-16:30(11월-2월)
휴무일 월요일, 새해 연휴
입장료 100엔 
웹사이트 www.city.shibuya.tokyo.jp/eng/est/asakura.html





























4) Hillside Terrace(赤城神社)

후미히코 마키의 설계로 1969년부터 1992년까지 7단계에 걸쳐 개발된 저층 상업, 업무, 주거 복합 단지이다. 저층에 상업 시설이 있어 단지가 담장 없이 도시에 열려있다. 단지 중간에 Sarugaku Shirine도 인상적이다. 원형으로 5미터쯤 돋운 땅은 7세기에 만들어진 고분이고, 1919년에 아사쿠라 가문에서 그 위에 작은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힐사이드 테라스 개발과정에서 보존하기로 결정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주소 시부야구 사루가쿠초 18-8
TEL. +81 3-5489-3705




























5) Connel Coffee


1977년 단게 겐조가 설계한 소게쯔 회관 2층에 자리 잡은 넨도의 카페다. 천장과 벽면에 반사율 높은 검정색 마감재를 쓴 단게 겐조의 설계를 그대로 살렸다. 창 밖으로 작고 오래된 공원의 나무가 사방에서 반사되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안쪽 매장 가구를 넨도가 디자인했고, 바깥 매장에 에로 사리넨의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주소 미나토구 아카사카 7-2-21 소게쯔 회관 2층
TEL. +81 3-6434-0192
영업시간 9:00-18:00(토요일 17시까지)
휴무일 일요일

















6) Edo-Tokyo Open-Air Architectural Museum(江戸東京たてもの園)


도쿄의 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물을 현지 보존이 어려워 옮겨 놓은 건축 박물관이다. 관련 지식이 있다면 더 재밌을 것 같지만, 아는 게 별로 없더라도 사람이 실제로 살았던 도시 단독주택, 농가, 상가주택 등을 직접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즐거울 것 같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가서 둘러보다가 커피도 마시고 우동도 먹으면 좋을 듯.


건축가인 쿠니오 마예카와 주택이 특히 좋았다. 1942년에 본인의 설계로 지어 혼자 살다가 1945년 긴자에 있던 사무실이 공습으로 파괴되면서 1954년까지 2층을 사무실로 썼다. 사무실을 집으로 옮긴 해에 결혼해 이 집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다. 사무실로 쓰던 때의 사진과 건축가와 부인, 반려견이 함께 거실에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주소 코가네이시 사쿠라초 3-7-1
TEL. +81 42-388-3300
영업시간 9:30-17:30
휴무일 월요일
입장료 400엔
웹사이트 http://www.tatemonoen.jp

























7) Okuno Building

긴자는 도쿄에서도 서양식 건물이 가장 일찍 지어진 지역이라는데, 관동대지진과 제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많지 남아있지 않다. 오쿠노 빌딩은 1932년 고급 아파트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낡을대로 낡아 갤러리와 젋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이 입주해 있다. 수동 개폐식 엘리베이터가 있다. 오래된 건물뽕을 채워주는 건물이랄까.




주소 추오구 긴자 1-9-8













































지난 2016년 도쿄 여행 기록은 아래 주소에⇩⇩⇩










2018년 9월 1일 토요일

생활의 단면

"다음 날 밤에도 진이는 도둑질을 나섰다. 어떻게 밀가루만 먹고 사느냐면서, 혜순은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진이에겐 마음 편했다. 장도리와 초와 성냥을 가지고 그녀는 매일 밤 집을 나섰다. 하룻밤에 한 집, 어떤 날은 두서너 집까지도 뒤졌다. 엿장수 집도, 미장이 집도, 목수 집도 있었다. 물론 무엇을 해 먹고 살았는지 분명치 않은 집이 더 많았고, 애들이 여럿 있었던 것 같은 집도 그렇지 않은 집도 있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사람 없는 빈집이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생생한 사람들의 생활의 모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잠깐 외출을 하려고 벗어놓은 양말짝을 구석으로 감추고 갈아입은 때 묻은 속옷을 뭉쳐놓는 등 될 수 있는 대로 자기의 자취를 감춘다. 그것이 또한 깔끔한 걸로 돼 있다. 그러나 이곳 판자촌의 부재중은 그런 깔끔한 부재중이 못 되었다. 얼마나들 서둘렀으면 갖가지 모습의 적나라한 생활의 단면을 그대로 한 겹 빈지문 속에 펼쳐 놓은 채 그들은 부재중이었다.
진이는 매일 밤 도깨비에 홀린 듯이 이런 사람들의 생활의 모습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그녀는 훨씬 덜 외로워지고 명랑해졌다. 많은 친구를 가까운 곳에 가지고 있는 듯한 착각은 착각이라기엔 너무도 흐뭇했다. 밀가루도, 밀도, 보리쌀도, 쌀까지도 생겼다. 이제 더 이상 도둑질을 나설 아무런 명분도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밤 그맘때가 되면 진이는 설레고, 흘금흘금 눈치를 보다가 집을 빠져나오고 마는 것이었다.
곧 어떤 순박한 서민의 숨소리가 들릴 듯한 방이나, 부엌, 살던 그대로의 모습에 조그만치의 위장도 가하지 않은 생생한 생활의 모습들을 보고픈 갈망으로 먹을 것을 구하려는 당초의 목적은 점점 잊어버려 가고 있었다. 당초의 그녀가 핑계 삼던 보름달도 점점 기울어 거의 칠흑의 밤이 돼도 그녀는 그 일을 끊지 못했고, 산으로 올라가는 비탈엔 완전히 길이 생겼다."

- 박완서 지음, <목마른 계절>, 302-303쪽, 세계사 2012.







2018년 8월 30일 목요일

8월 독서 모임 <자기만의 방>




첫 독서 모임.
2018년 8월 21일, 홍대의 북카페에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자기만의 방>,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






2018년 8월 20일 월요일

오래된 농담

“너 이사하던 날 그 골목에서 마주쳤잖아” 나는 하하하 웃고 말았다. 오빠가 이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와 내가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오래된 농담이다. 

내가 보광동으로 이사하던 날이니까 벌써 6년 전 봄의 일이다. 오빠와 서로를 알기 전에 보광동 골목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 입구에 주차한 1톤 트럭으로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그 골목에서 오빠를 마주쳤다. 오빠는 같은 학교 건축학과 친구들과 만든 답사 모임에서 보광동 답사를 온 참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쯤 뒤에 우연히 트위터 친구의 초대로 답사 모임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오빠를 처음, 아니 두 번째로 만났다. 우리는 “혹시!” “혹시!!”하다가 우리가 이전에 보광동 골목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사진을 찍던 오빠를 나는 기억했다. 오빠는 내 이삿짐 트럭 위에 책들이 많아서 인상깊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농담이 되었다. 

“우리 그때 봤었잖아. 그때. 서로 모를 때.” “진짜 신기하다 그치” 오랜만에 만난 오빠가 오늘도 그 이야기를 꺼내서 좋았다.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좋다.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사랑의 기억


"숲이 가까우니 바람 소리도 가깝다. 초저녁잠이 많아 새벽에 일찍 깰 수밖에 없는 나는 남 다 자는 시간에 호젓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날 하루 할 일의 계획도 세우는 게 습관화돼있다. 그러나 우수수...... 바람과 가을 나무가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에 잠이 깨면 실내 온도가 낮지도 않은데 이불깃을 어깨까지 올리고 이 생각 저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반복해 생각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이고 그립고 생각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 더 많구나, 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박완서,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 ≪세상에 예쁜 것≫, 237-238쪽, 마음산책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