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30일 목요일

8월 독서 모임 <자기만의 방>




첫 독서 모임.
2018년 8월 21일, 홍대의 북카페에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자기만의 방>,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






2018년 8월 20일 월요일

오래된 농담

“너 이사하던 날 그 골목에서 마주쳤잖아” 나는 하하하 웃고 말았다. 오빠가 이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와 내가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오래된 농담이다. 

내가 보광동으로 이사하던 날이니까 벌써 6년 전 봄의 일이다. 오빠와 서로를 알기 전에 보광동 골목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 입구에 주차한 1톤 트럭으로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그 골목에서 오빠를 마주쳤다. 오빠는 같은 학교 건축학과 친구들과 만든 답사 모임에서 보광동 답사를 온 참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쯤 뒤에 우연히 트위터 친구의 초대로 답사 모임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오빠를 처음, 아니 두 번째로 만났다. 우리는 “혹시!” “혹시!!”하다가 우리가 이전에 보광동 골목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사진을 찍던 오빠를 나는 기억했다. 오빠는 내 이삿짐 트럭 위에 책들이 많아서 인상깊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농담이 되었다. 

“우리 그때 봤었잖아. 그때. 서로 모를 때.” “진짜 신기하다 그치” 오랜만에 만난 오빠가 오늘도 그 이야기를 꺼내서 좋았다.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좋다.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사랑의 기억


"숲이 가까우니 바람 소리도 가깝다. 초저녁잠이 많아 새벽에 일찍 깰 수밖에 없는 나는 남 다 자는 시간에 호젓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날 하루 할 일의 계획도 세우는 게 습관화돼있다. 그러나 우수수...... 바람과 가을 나무가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에 잠이 깨면 실내 온도가 낮지도 않은데 이불깃을 어깨까지 올리고 이 생각 저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반복해 생각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이고 그립고 생각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 더 많구나, 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박완서,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 ≪세상에 예쁜 것≫, 237-238쪽, 마음산책 2012.









2018년 8월 9일 목요일

세세한 대화가 그와 나를 친구로 이끌 확률.

그가 내게 왜 손가락에 밴드를 붙였는지 물었다. 그냥 다쳤다고 간단히 대답해도 될 일을, 엄마에게 전복을 받은 일이며, 전복을 손질하는 방법, 어느 단계에서 손을 베었는지, 그렇게 해 먹은 요리가 어땠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열심히도 들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눠본 건 처음이었다.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이제 그가 새우를 먹을 때 머리와 꼬리만 떼고 통째로 먹는다는 것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 또 그가 한솥에서 도시락 값을 떼먹은 적이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 그는 바나나우유를 한 단지, 나는 커피우유를 두 팩 마셨다.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며 오늘 고민하다 빠에 왔는데 나를 봐서, 나와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다며 오길 잘했다고 했다. 능숙하지 않아서 오히려 진심처럼 느껴졌다. 어색하지만 애쓰는 모습이, 마음에 더 가까운 말로 느껴졌다. 마음과 말의 거리가 짧게 느껴지는 사람과의 대화는 안심이 된다. 진심일까 의심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쩌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좋아하는 시간

오랜 친구와 타코를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눴다. 나는 서운함과 설렘, 권태를 이야기했고, 친구는 기대와 겁, 헛헛함을 이야기했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서로의 쓸쓸함을 실컷 어루만졌다. 카페에서 나와 선릉까지 함께 걸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고 근래 어느 날보다 기분이 좋았다. "산책과 대화. 내가 원하는 건 이것뿐"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렇지, 그게 전부지 뭐"라고 했다.












2018년 8월 5일 일요일

박완서 지음, <나목>, 세계사 2012.

<나목>은 1970년 박완서의 나이 40세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모집에서 당선된 데뷔작이다.

1950년대 초반의 서울, 미군 PX 초상화부 점원인 이경이 주인공이다. 이경을 둘러싼 세계(고가와 어머니가 상징하는 세계)는 전쟁과 죽음의 망령에 사로잡힌 부연 회색빛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랑하고픈 마음,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열망이 있다. 초상화부는 미군을 상대로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애인에게 보낼 초상화를 그려주는 곳으로,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 중 한 명인 옥희도 씨(박수근 작가가 모델인 인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경의 일터인 충무로의 PX와 계동의 고가를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경의 퇴근길을 묘사한 장면. 


"나는 종종걸음으로 어두운 모퉁이를 재빨리 벗어나 환한 상가로 나섰다. PX를 중심으로 갑자기 발달한 미군 상대의 잡다한 선물 가게들ㅡ사단이나 군단의 마크를 수놓은 빨갛고 노란 인조 머플러, 담뱃대, 소쿠리, 놋그릇,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그런 가게 앞에서 나는 기웃거리며 될 수 있는 대로 늑장을 부리다가 어두운 모퉁이에서는 숨이 가쁘도록 뜀박질을 했다.
그러한 번화가인 충무로조차도 어두운 모퉁이, 불빛 없이 우뚝선 거대한 괴물 같은 건물들 천지였다. 주인 없는 집이 아니면 중앙 우체국처럼 다 타버리고 윗구멍이 뻥 뚫린 채 벽만 서 있는 집들, 이런 어두운 모퉁이에서 나는 문득문득 무섬을 탔다.
어둡다는 생각에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생각이 겹쳐오면 양키들 말마따나 갓댐 양구, 갓댐 철원, 문산 그런 곳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너무도 가까운 것 같아 나는 진저리를 치며 무서워했다.
나는 그런 곳에서 좀 더 멀리 있고 싶었다. 적어도 대구나 부산쯤, 전쟁에서 멀고 집집마다 불빛이 있고 거리마다 사람이 넘치는 곳에 있고 싶었다.
나의 빨랐다 느렸다 하는 걸음은 을지로를 지나 화신 앞에서부터는 줄창 뜀박질이 되고 말았다.
외등이라든가 구멍가게라든가 그런 아무런 표적도 없는 죽은 듯이 어두운 비슷한 한식 기와집 사이로 미로처럼 꼬불탕한 골목길을 무섭다는 생각에 가위눌리면서 달음박질쳤다.
드디어 집이 가까워지면서 어둠만이 보이던 나의 눈에 별이 박힌 부연 하늘이 들어오고, 그 부연 하늘을 이고 서서 한쪽이 보기 싫게 일그러져나간 채인 우리 집의 지붕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보인다."
19-20쪽.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미스코시 백화점 경성지점(1930년 10월 24일 개점)을 한국전쟁 당시 미군 PX로 사용했다. 현재 신세계 본점 건물.




미군 PX
출처: Dewey McLean의 Flickr 앨범 <Korean War Memories 1951-1953






중앙우체국
출처: Dewey McLean의 Flickr 앨범 <Korean War Memories 1951-1953





화신백화점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여러분의 백화점·화신·경성본점·평양지점, 조흔물건싸게파는←전조선화신연쇄점>,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발굴 한국현대사인물 ㊼(㊼) 화신백화점 설계한 근대건축 선구자>, 
한겨레신문, 1990년 11월 16일자.




그외에도 공간 배경으로 낡은 일본식 이층집인 태수의 집과 기왓집인 옥희도 씨의 집, 명동, 이경이 결혼 후 고가를 헐고 새로 지은 양옥이 나온다.






너무 많은 죽음

목을 매달았다니. 전해들었을 뿐인데,
죽음의 모습을 직접 본 듯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어 더 괴롭다.

목을 매단 나무 아래에 담배 꽁초가 수북이 쌓여있더란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희망이 없는 사람의 심정을 떠올린다.

꿈자리가 사납더니
아침에 요리하다 손을 두 번 베었다.


너무 많은 죽음이 나의 생에 스며있다.





2018년 8월 3일 금요일

씩씩한 지혜 씨.


풀 죽은 내게 
친구가 
"넌 참 씩씩해"라며
아래 사진을 보내줬다.








그리고
 아래는 
같은 친구가 3년 전에 찍어준 사진.
가장 좋아하는 내 사진.






씩씩한 내가 마음에 든다.
난 참 씩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