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사랑의 기억


"숲이 가까우니 바람 소리도 가깝다. 초저녁잠이 많아 새벽에 일찍 깰 수밖에 없는 나는 남 다 자는 시간에 호젓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날 하루 할 일의 계획도 세우는 게 습관화돼있다. 그러나 우수수...... 바람과 가을 나무가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에 잠이 깨면 실내 온도가 낮지도 않은데 이불깃을 어깨까지 올리고 이 생각 저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반복해 생각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이고 그립고 생각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 더 많구나, 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박완서,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 ≪세상에 예쁜 것≫, 237-238쪽, 마음산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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