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독서 모임.
2018년 9월 19일, 망원의 북카페에서.
호프 자런 지음, <랩 걸>, 김희정 옮김, 알마 2017.
과학자 호프 자런이 자신만의 실험실을 꾸리기까지 "어떻게 몸과 마음을 모두 쏟아부으며 과학을" 해왔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 과학에 대한 열정, 동료 빌과의 신의, 식물 이야기가 담겼다.
"다음 날 밤에도 진이는 도둑질을 나섰다. 어떻게 밀가루만 먹고 사느냐면서, 혜순은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진이에겐 마음 편했다. 장도리와 초와 성냥을 가지고 그녀는 매일 밤 집을 나섰다. 하룻밤에 한 집, 어떤 날은 두서너 집까지도 뒤졌다. 엿장수 집도, 미장이 집도, 목수 집도 있었다. 물론 무엇을 해 먹고 살았는지 분명치 않은 집이 더 많았고, 애들이 여럿 있었던 것 같은 집도 그렇지 않은 집도 있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사람 없는 빈집이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생생한 사람들의 생활의 모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잠깐 외출을 하려고 벗어놓은 양말짝을 구석으로 감추고 갈아입은 때 묻은 속옷을 뭉쳐놓는 등 될 수 있는 대로 자기의 자취를 감춘다. 그것이 또한 깔끔한 걸로 돼 있다. 그러나 이곳 판자촌의 부재중은 그런 깔끔한 부재중이 못 되었다. 얼마나들 서둘렀으면 갖가지 모습의 적나라한 생활의 단면을 그대로 한 겹 빈지문 속에 펼쳐 놓은 채 그들은 부재중이었다.
진이는 매일 밤 도깨비에 홀린 듯이 이런 사람들의 생활의 모습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그녀는 훨씬 덜 외로워지고 명랑해졌다. 많은 친구를 가까운 곳에 가지고 있는 듯한 착각은 착각이라기엔 너무도 흐뭇했다. 밀가루도, 밀도, 보리쌀도, 쌀까지도 생겼다. 이제 더 이상 도둑질을 나설 아무런 명분도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밤 그맘때가 되면 진이는 설레고, 흘금흘금 눈치를 보다가 집을 빠져나오고 마는 것이었다.
곧 어떤 순박한 서민의 숨소리가 들릴 듯한 방이나, 부엌, 살던 그대로의 모습에 조그만치의 위장도 가하지 않은 생생한 생활의 모습들을 보고픈 갈망으로 먹을 것을 구하려는 당초의 목적은 점점 잊어버려 가고 있었다. 당초의 그녀가 핑계 삼던 보름달도 점점 기울어 거의 칠흑의 밤이 돼도 그녀는 그 일을 끊지 못했고, 산으로 올라가는 비탈엔 완전히 길이 생겼다."
- 박완서 지음, <목마른 계절>, 302-303쪽, 세계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