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손을 유심히 보던 사람이 있었다. 재주 많은 손이라며, 만날 때마다 손을 꼼꼼히 오래 들여다봤다. 손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무엇인 듯이, 마치 손에서 나의 모든 세계를 들여다보듯이. 나는 뼈와 핏줄이 불거진 크고 투박한 손이 창피해서 간지럽다며 서둘러 손을 그에게서 빼내고는 했다.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자신이 싫어질 , 손가락을 보라고, 그리고 손가락, 손가락 움직여 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사람 생각을 잠깐 했다. 

사람도 가끔 어떤 손을 보면 나를 떠올릴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다른 누군가의 손을 탐구하고 있을까. 어느 쪽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이전보다 나의 크고 투박한 손을 좋아하게 되었다. 누군가 찬찬히 오래 보아주던 . 사람은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최은영, <그때의 은희들에게>, 《벌새》, 아르테 2019.

2019년 10월 3일 목요일

가족사진






가장 좋아하는 가족사진이다. 책상맡, 책 읽다 고개 들면 눈길 닿는 곳에 두었다. 공부방에 있는 유일한 사진이자 상자에서 꺼내 둔 유일한 가족사진이기도 하다.


84년도 어딘가의 해변이다. 모래에 비스듬히 꽂힌 파라솔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은 엄마와 아빠, 언니가 보인다. 사진 속의 엄마와 아빠는 나보다 5살, 8살 어리다. 그들은 무언가를 막 먹으려는 듯 모여 앉아 있다. 세 사람 모두 수영복을 입었고 아빠와 엄마는 밀짚모자를 썼다. 돗자리 왼쪽 모퉁이에 놓인 모자가 언니의 것이라기엔 커 보인다. 아마 이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의 것일지 모르겠다. 그가 누구인지 전혀 짐작 가지 않는다.  언니가 입은 수영복은 내가 나중에 물려 입기도 했다. 저 수영복을 입은 나의 사진이 이 집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엄마는 2010년 두 번째 결혼을 할 때 가족사진을 모두 나에게 주었다.

나는 자주 이 사진을 들여다 보며 사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있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