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가 내부 공사를 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몹시 서운했다. 집에 오는 길에 이 서운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핸드폰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2018년 4월 13일 밤에 산책하다가 서양미술사를 처음 발견했다. 아직 이전 가게의 간판(파크부동산)이 달려 있었고, “커피부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글씨체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초겨울,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 덜덜 떨며 가게에 들어 온 내게 사장님은 주문도 받기 전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내어주셨다. 손에 잡히던, 손바닥으로 전해지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한다. 퇴사한 날 회사에서 나온 11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무작정 합정역으로 향했다. 서양미술사에서 나폴리탄 스파게티에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취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먹은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나의 유일한 나폴리탄 스파게티이자 최고의 나폴리탄 스파게티다. 우유 거품이 가득 올라간 아란치노 잔을 양손으로 쥔 사장님을 보고 크게 웃었던 날을 기억한다. 왜 그렇게 웃음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좀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내게 사장님은 "지혜 님이 이렇게 밝은 분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다음에 갔을 때 아란치노를 주문해 봤다. 오렌지청이 들어간 커피와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꼬인 머릿속을 쾌청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나는 그후로도 아란치노 잔만 보면 웃음이 났다. 옆자리 손님이 친구에게 “여기는 핸드드립이 유명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다음에 갔을 땐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에 쓴 맛이 전혀 없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커피를 두 잔 마시고 심장이 두근두근했던 날을 기억한다. 포개진 컵을 설거짓거리인 줄 오해하고 사장님을 놀렸던 날을, 맥주를 얻어 마신 날을,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생각의 여름의 <다섯 여름이 지나고>를 틀어 두고 깜빡 졸았던 날을 기억한다.
다 기억할 거니까. 괜찮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기억이 쌓일 테니까. 그건 또 얼마나 좋을까.
<서양미술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i_sul_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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