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30일 화요일

할머니

화요일마다 가는 카페 사장님이 여름 휴가를 가셨다. "할머니 댁에서 잠을 실컷 자다가 올 생각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좋겠다. 할머니가 있어서.


나는 할머니가 참 좋았다. 우리 가족은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면 아빠가 몰던 파란색 트럭을 타고 할머니댁에 갔다. 운전석에 아빠가 앉고 그 옆에 엄마 언니 내가 차례로 앉았다. 내가 가장 문 쪽에 앉았기 때문에, 할머니댁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차에서 뛰어내렸다. 끼기긱 소리가 나는 나무 대문을 밀치고 마당으로 달려 들어가며 "할머니이-"하고 소리쳤다. 할머니는 "응- 왔어? 꽃비는?"하고 물었다. 할머니의 눈은 작은 나의 정수리 너머 를 향해 있었다. 언니가 뒤따라 마당으로 들어오면 할머니는 '꽃비 먹으라고' 찐 옥수수와 '꽃비 먹으라고' 담근 식혜를 마루로 내왔다.

할머니에게 언니는 각별했다. 언니가 네다섯 살 때쯤 엄마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댁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니가 마루에 걸터 앉아 할머니 옆에서 옥수수와 식혜를 먹는 사이, 나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가 선풍기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선풍기 머리에 대고 "아아아아아아아"하고 소리를 내면, 선풍기가 "아아아아아아아"하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매번 꽃비를 찾았고, 매번 꽃비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두었고, 매번 꽃비의 졸업과 입학만 챙겼다. 요즘도 나는 옥수수나 식혜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나는 여전히 할머니가 참 좋았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부모님은 이 년 정도 할머니를 우리집에 모셨다. 입시 준비로 언니가 바쁜 덕분에 나는 할머니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밭일로, 논일로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는데도 살결이 보드랍고 포근했다. 포근한 할머니에게 안기는 게 좋았다. 당뇨 때문에 퉁퉁 부은 할머니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게 좋았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모들 어릴적 이야기가 좋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 매점에서 사다주는 인절미가 좋았다. 당뇨 때문에 식단 조절을 해야 하는 할머니가 인절미를 하나 더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좋았다. 엄마 몰래 할머니와 간식을 나눠먹는 게 좋았다. 할머니와 나 둘만 아는 비밀이 좋았다.


할머니댁에 가서 잠을 실컷 자다 올 수 있다면 좋겠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마루에 누워서 "할머니 나 어릴 때 왜 맨날 언니가 좋아하는 옥수수랑 식혜만 해줬어?" "내가 옥수수랑 식혜에 손도 안 대는 거 알았어?" 그렇게 응석도 부리고 싶다. 할머니댁에는 지금 누군가 남이 산다더라. 좋겠다. 할머니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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