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을 잘 모르면서도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한 것이라 믿고 있다. 지면(紙面)이 곧 지면(地面)이어서, 나는 거기에 글을 짓는다. 건축을 위한 공정 혹은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있을 만하고 또 있어야만 하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 한 편의 글에 그런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은 (취향이나 입장이 아니라) 인식이다.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건축에 적합한 자재(資材)를 찾듯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특정한 인식을 가감 없이 실어 나르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는 플로베르적인 가정을 나는 믿는다. 그런 문장은 한번 쓰이면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다.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필요한 단락의 개수를 계산하고 각 단락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배분한다. 가급적 각 단락의 길이를 똑같이 맞추고 이를 쌓아 올린다. 이 시각적 균형은 사유의 구조적 균형을 반영한다(반영해야 한다). 이제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 한 단락도 더하거나 빼면 이 건축물은 무너진다(무너져야 한다).
-서문에서.
12월 독서 모임에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을 읽고 이야기 나눴다. 이 책은 2010년 이후 ≪한겨레21≫의 '문학사용법' 코너에 연재한 글과 함께 다른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하나로 책 전체를 꿰는 주제 없이, 그 때 그 때 쓰여진 글을 묶은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고민했다.
서문의 실린 좋은 글을 짓기 위한 세가지 준칙(인식적, 정서적, 미학적 측면)을 토대로 신형철 문학비평가가 문학작품을 비평하는 기준이 드러난 문장을 본문에서 발췌해 갔다.